이의현의 시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은 숙종‧경종‧영조 때의 문신이다. 실록에 의하면, 그의 자는 덕재(德哉)이고 호는 도곡(陶谷)이며 본관은 용인으로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26살(1694, 숙종20)에 문과에 급제하여 30살에 정언, 지평을 지냈고, 35살에 부친상을 당했다. 37살에 교리, 헌납, 응교를 거쳐 40살에 승지가 되었다. 수원부사를 거쳐 42살에 이조참의가 되었고, 이듬해 경상감사로 나갔다. 다음해 대사간, 이조참의가 되어 노론을 뽑았다. 45살에 부제학, 대사성을 거쳐, 이듬해 황해감사가 되었고, 48살에 개성유수, 예조참판, 도승지, 대사헌이 되었다. 다음해 경기관찰사로 나갔으나, 모친상을 당했다. 52살에 대사간이 되고,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한성판윤, 형조판서, 우참찬이 되었다. 이듬해에 예조․이조․형조판서, 예문관 제학이 되었으나 54살(1722, 경종2)에 신임사화로 운산(雲山)에 유배되었다. 57살(1725, 영조1)에 풀려나와 형조판서, 이조판서가 되어 소론을 타도하고 노론을 뽑았다. 판의금부사, 대제학 등을 겸했으며, 이듬해 예조판서, 양관 대제학을 거쳐 59살에 우의정에 올랐으나 정미환국으로 파면되었다. 양주 도산촌에 은거하다가,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판중추부사에 기용되고, 판의금부사로 난적을 다스렸다. 64살에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67살에 영의정에 올랐다. 사람됨이 청렴하고 검소했으며, 글씨에 능했다.
온몸에 깃이 돋혀 벽해(碧海)를 날아 건너
봉래산(蓬萊山) 깊은 곳에 불로초(不老草)를 캐어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드리고자 하노라.
노화(蘆花) 깊은 곳에 낙하(落霞)를 비끼 띠고
삼삼오오(三三五五)이 섞여 노는 저 백구(白鷗)들아
우리도 강호구맹(江湖舊盟)을 찾아보려 하노라.
녹수청산(綠水靑山) 깊은 골에 청려완보(靑藜緩步) 들어가니
천봉(千峰)에 백운(白雲)이요 만학(萬壑)에 연무(煙霧)로다.
이곳이 경개(景槪) 좋으니 예 와 늙자 하노라.
그는 노론의 중요 인물로 소론과의 정쟁 한가운데서 일생을 보냈다. 김창협의 문하에서 학자를 지망했던 그가 과거에 나간 것은 갑술환국으로 남인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자 자신의 주관으로 승진 대상에 노론만을 추천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신임사화로 노론이 숙청될 때 운산에 귀양 갔다가 영조의 즉위와 더불어 정계에 복귀하여 소론을 타도하고 노론 정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정미환국으로 다시 쫓겨났다가 재기용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거듭했다. 위의 세 작품은 그가 강호에 머물 때 지은 것인데, 첫 수는 운산에 유배되었을 때 지었고, 다음 두 편은 정미환국으로 물러나 양주 도곡촌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첫 수는 자신이 새처럼 날아서 봉래산의 불로초를 캐어다가 임금에게 드리고 싶다는 말로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것이다. 임금에 대한 이런 기원은 또한 자신을 포함하여 축출된 노론을 기용해 달라는 기원을 뒤집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초장에는 자신의 소망을 새에게 투사하여 바다 건너 있다는 삼신산을 찾아가게 하고, 중장에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에서 불로초를 구하게 한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그것을 임금에게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귀양간 신하가 원망을 감추고 임금에 대한 기원을 드러낸 것은 지극한 충성심이기도 하고 총애의 갈구이기도 하다. 둘째 수는 만년에 전원에 돌아와서 자연 속에 노니는 흰 갈매기를 보고 옛날에 자연 속에서 살기를 기약했던 바를 상기하고 늦게나마 지켜보려 한다는 것이다. 초장은 배경 묘사다. 갈대꽃이 핀 가을 날 저녁노을을 비스듬히 띠고 나는 갈매기의 배경이다. 중장에는 떼 지어 나는 갈매기를 부르고 있다. 왜 부르는가. 자신의 심중을 토로해 보고 싶어서다. 종장에서 심중을 말했는데 강호에서 살겠다던 옛 약속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젊어서 벼슬에 나가 입신양명하고 나이 들면 전원에 돌아와 명철보신하는 벼슬아치의 전형적인 생활철학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수는 전원에 돌아와서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초장과 중장은 푸른 산 맑은 물을 찾아 지팡이 짚고 유람하는 정경이다. 봉우리마다 흰 구름이 걸리고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시인이 한문 교양에 단련된 만큼 한자어가 빈번히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종장에서는 경치 좋은 자연 속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경치를 찾는 흥취와 여생을 보내려는 의지가 어우러져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