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의 시
김성기(金聖器)는 숙종‧경종 때의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완암집(浣巖集)>과 <청구영언>,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등에 의하면, 그의 자는 자호(子湖)이고 호는 어은(漁隱)‧조은(釣隱)‧낭옹(浪翁) 등이다. 평민 출신으로 상의원(尙衣院)에서 활 만드는 사람이었으나 활을 버리고 왕세기(王世基)에게서 거문고를 배웠으며 퉁소, 비파에도 뛰어나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자신이 신곡을 만들어서 그 악보를 익혀 이름을 얻은 이도 많았다. 김유기가 시조를 고조(古調)로 부른 반면 그는 금조(今調)로 불렀다고 한다. 잔치 집에 많은 예술인이 초대되었으나 그가 없으면 흠으로 여겼다. 집이 가난해도 놀고 지내니 처자가 굶주렸다. 만년에 서호(西湖)로 옮기고 작은 배를 사서 낚시로 생계를 삼았으며 달밤에 퉁소를 불었다. 신임사화의 고변자로서 위세를 부리던 목호룡(睦虎龍)이 초청하였으나 거절했다. 그 후 성안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 김중여(金重呂) 등과 강 위에서 퉁소를 즐겼다. 사람됨이 청렴 개결하여 말이 적었고 술을 좋아했다. 시조 8수가 전한다.
강호(江湖)에 버린 몸이 백구(白鷗)와 벗이 되어
어정(漁艇)을 흘리 놓고 옥소(玉簫)를 높이 부니
아마도 세상 흥미(興味)는 이뿐인가 하노라.
진애(塵埃)에 묻힌 분네 이내 말 들어보소.
부귀공명(富貴功名)이 좋다도 하려니와
값없는 강산풍경(江山風景)이 긔 좋은가 하노라.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竹杖芒鞋) 집고 신고
요금(瑤琴)을 빗기 안고 서호(西湖)로 들어가니
노화(蘆花)에 떼 많은 갈매기는 내 벗인가 하노라.
이 몸이 할 일 없어 서호(西湖)를 찾아 가니
백사청강(白沙淸江)에 나니나니 백구(白鷗)로다.
어디서 어가일곡(漁歌一曲)이 이내 흥을 돕나니.
그의 시조들은 서호로 거처를 옮긴 만년의 작품이다. 김중여가 김천택에게 김성기의 작품을 전하면서 10수년간 강호에 함께 노닐며 읊은 작품을 기록해 둔 것이라고 했다. 김천택은 그의 작품을 평하여, 산수(山水)간에 노닌 흥취를 담아서 물외(物外)에 자유로이 노닐고자 하는 뜻을 표현했다고 하였다. 우선 4수를 보자.
첫 수는 이른바 ‘강호가도(江湖歌道)’를 드러낸 것이다. 사대부들이 벼슬을 그만 두고 전원에 돌아가 명철보신의 수단으로서 강호가도를 즐겼던 것이 이제 평민 가객들이 차별받는 세상을 버리고 강호에 묻혀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변화되었다. 초장에서 자신을 ‘강호에 버린 몸’이라 하여 세상의 차별을 암시하면서, 강호에서 갈매기와 벗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살기로 했다고 했다. 중장은 고깃배와 옥피리로 초장의 자연과 갈매기에 대구를 이룬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다. 이런 경지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최상의 경지라고 종장에서 밝혔다. 둘째 수에서는 세속에서 부귀공명을 좇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흙먼지 자욱한 속세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처럼 강산풍경을 자유로이 즐기는 강호생활로 돌아오라고 권유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도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홍진세계를 버리고 서호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갈매기와 벗하며 자유롭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상의원의 궁장(弓匠)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거문고를 익혀서 음악 속에서 정신적 자유와 창조를 이루고자 했으며, 만년에는 세속적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서강의 갈매기와 거문고로 노닐었던 것이다. 넷째 수에도 같은 정취가 담겨있다. 할 일이 없다고 했지만 이는 신분적 차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호의 흰모래 맑은 물위를 나는 갈매기와 벗하면서 어부가 한 곡을 탄주하는 흥취가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 그는 자연 속의 흥취를 즐기고자 어부가 되어 자유로이 살고자 했으니 사대부의 가어옹(假漁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굴레 벗은 천리마(千里馬)를 뉘라서 잡아다가
조죽 삶은 콩을 살지게 먹여 둔들
본성(本性)이 왜양하거니 있을 줄이 있으랴.
옥분(玉盆)에 심은 매화(梅花) 한 가지 꺾어내니
꽃도 곱거니와 암향(暗香)이 더욱 좋다.
두어라 꺾은 꽃이니 버릴 줄이 있으랴.
겨울이 다 지나고 봄철이 돌아오니
만학천봉(萬壑千峰)에 푸른빛이 새로워라.
아이야 강호(江湖)에 배 띄우고 낚대 추심(推尋)하여라.
요화(蓼花)에 잠든 백구(白鷗) 선잠 깨어 날지 마라.
나도 일 없어 강호객(江湖客)이 되었노라.
이 후는 찾을 이 없으니 너를 좇아 놀리라.
첫 수는 자신이 세속적 가치에 적합지 않다는 자부심을 읊은 것이고, 둘째 수는 숨은 흥취를 즐기는 자신의 취향을 말한 것이며, 셋째 수는 강호에 노니는 어부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마지막 수는 자연 속에서 갈매기와 놀며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든 것을 노래하였다.
첫 수에서 자신을 굴레 벗은 천리마라고 하여 거침없는 자유의지를 표출했다. 겨와 콩을 섞어 삶아 먹인들 본성이 억세고 거친 천리마가 구속되어 있겠느냐고 해서 결코 자신은 세속에 얽매여 살 사람이 아니라 자연 속에 노닐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둘째 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조금 특이하다. 세속을 떠나 자연을 지향하는 대신 숨은 가치를 추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지향도 숨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인의 지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옥분에 심은 매화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의 표상이다. 그것을 꺾어서 꽃의 자태와 그 향기를 오래도록 지니고 싶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만이 추구하는 정신의 자유를 그는 자연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셋째 수는 새 봄을 맞아 한강에서 멀리 펼쳐진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푸른빛을 띤 강호의 풍경 속에서 낚시를 준비하는 정취를 읊었다. 봄날에 펼쳐진 새로운 자연경관은 그에게 신천지의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계절의 순환은 마치 새로운 우주를 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는 서강가 갈대밭에서 놀라 나는 갈매기에게 함께 놀자고 말한다. 물론 갈매기는 자연의 상징이다. 세속을 떠나 강호객이 되었다면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니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정신의 경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