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욱의 시
박문욱(朴文郁)은 영조 때의 가인(歌人)이다. <청구가요(靑丘歌謠)>에 의하면, 그의 자는 여대(汝大)이고 서리(書吏) 출신이다. 김수장이 경정산(敬亭山)으로 상대하던 친구 중의 하나다. 김수장은 이르기를, “여대의 작품을 보니 뜻이 넓고 크며 말이 순수하고 성실하며, 어떤 것은 강개함을, 어떤 것은 청수(淸秀)함을, 어떤 것은 허랑함을, 어떤 것은 사람을 감발(感發)케 함을 노래하여 이 사람의 국량은 남쪽 바다처럼 끝이 없다. 박군의 세상살이는 가난하나 생업을 돌보지 않고 빈천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마음이 여유로웠다. 평생 술을 고래같이 마셨고, 노래 부르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어 진세간의 호걸군자였다.”라고 했다. 그의 시조는 사랑에 대한 절실하고도 진솔한 표현이 많다. 시조 17수가 전한다.
갈 제는 오마터니 가고 아니 오노매라.
십이난간(十二欄干) 바장이며 님 계신 데 바라보니 남천(南天)에 안진(雁盡)하고 서상(西 廂)에 월락(月落)토록 소식이 그쳐 있다.
이 뒤란 님이 오셔든 잡고 앉아 새우리라.
내게는 원수(怨讐)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벽사창(碧紗窓) 깊은 밤에 품에 들어 자는 님을 짜른 목 늘이어 홰홰쳐 울어 일어나게 하 고 적막중문(寂寞重門)에 왔는 님을 물으락 나오락 캉캉 짖어 도로가게 하니
아마도 유월유두(六月流頭) 백종전(百種前)에 스러져 없이 하리라.
사랑 사랑 고고이 맺힌 사랑 온 바다를 두루 덮는 그물같이 맺힌 사랑
왕십리(往十里) 답십리(踏十里)라 참외 넌출 수박 넌출 얽어지고 틀어져서 골골이 뻗어 가 는 사랑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가없는가 하노라.
오정주(烏程酒) 팔진미(八珍味)를 먹은들 살로 가랴.
옥루금병(玉漏金屛) 깊은 밤에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도 일 없으면 거짓 것이로다.
저 님아 헌 덕석 짚 베개에 초식(草食)을 할지라도 이별(離別)곳 없으면 긔 원(願)인가 하 노라.
그의 사랑에 대한 시조를 보기로 하자. 그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형식을 장형화했다. 첫 수는 가신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어조를 띠고 있다. 돌아오겠다면서 떠난 님이 오지 않자 난간을 서성대며 님이 있는 쪽을 바라보지만 남쪽 하늘에 기러기 날아가고 서쪽 행랑채 너머로 달이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다음에는 잡고 앉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님과의 달콤한 밤을 훼방하는 개와 닭을 미워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개와 닭을 원수로 미워하는 까닭은, 닭이 깊은 밤에 울고 개가 님을 쫓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월 보름인 유두(流頭)나 칠월 보름인 백중날이 오기 전에, 곧 여름에 이들을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이들은 사랑의 방해물이니까. 셋째 수에는 얼기설기 얽힌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사랑은 옷고름이나 끈을 고리처럼 매듭지은 고처럼 마디마디 맺혀있고, 바다를 덮는 그물같이 정으로 얽혀 있다. 참외나 수박 넝쿨처럼 얽혀서 뻗어가는 것이 남녀간의 가없는 사랑이라고 노래하였다. 마지막 수는 좋은 음식과 비단 금침이 사랑의 조건이 아니고 사랑만 있으면 거친 음식과 남루한 자리도 행복하다는 애정지상주의를 토로하였다. 오정주는 중국 형주 오정에서 나는 죽엽주이고, 팔진미는 아주 맛있고 잘 차린 음식으로 용의 간, 봉의 골수, 표범의 태, 잉어의 꼬리, 물수리 구이, 곰의 발바닥, 원숭이 입술, 연유 등을 말한다. 이런 걸 먹은들 사랑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라고 했다. 옥으로 만든 물시계나 금으로 만든 병풍을 갖춘 호화로운 방에서 원앙을 수놓은 베개와 비취색의 이불을 덮고 잔들, 사랑의 행위가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차라리 헌 덕석으로 이불을 삼고 짚베개를 베고 자며 푸나물을 먹고 살지라도 님과 이별하지 않고 오래 사랑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사랑의 절대가치를 노래하였다. 민중의 가식 없는 가치관의 토로이다.
나니 언제런지 어제런지 그제런지
월파정(月波亭) 밝은 달 아래 뉘 집 술에 취하였던지
진실로 먹음도 먹었을새 먹은 집을 몰라라.
석양(夕陽)에 매를 받고 내 건너 산 넘어가니
꿩 날리고 매 부르니 황혼(黃昏)이 거의로다.
어디서 반가운 방울소리 구름밖에 들리더라.
세상 사람들아 농고(聾瞽)를 웃지 마라.
시불견(視不見) 청불문(聽不聞)은 옛 사람의 경계(警誡)로다.
어디서 망령(妄伶)엣 벗님네는 남의 시비(是非)하느니.
알고 늙었는가 모르고 늙었노라.
주색(酒色)에 잠겼거든 늙은 줄 어이 알리.
귀밑에 백발(白髮)이 흩날리니 그를 슬퍼하노라.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 하니 누더러 물을소니
인정(人情)은 알았노라 세사(世事)는 모를로다.
차라리 백구(白鷗)와 벗이 되어 낙여년(樂餘年)을 하리라.
여러 가지 주제로 읊은 다른 작품들을 보자. 첫 수는 술 마시는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그가 술을 고래처럼 마셨다고 하니 사실을 표현한 것이리라. 어젠지 그젠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월파정의 밝은 달을 즐기며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먹기는 먹었는데 술에 너무 취하여 어느 집에서 술을 마셨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나니’는 감탄사다. 술 취한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자는 취락(醉樂)사상의 표현이다. 둘째 수는 사냥하는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저녁때 매를 받고 사냥터에 나가서 꿩을 쫓아 날리고 매를 부리니 구름 밖에서 매가 꽁지에 매단 방울 소리를 내며 날아 내리는 장쾌한 순간을 포착하였다. 매를 데리고 꿩 사냥을 즐기는 사나이의 씩씩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셋째 수는 세상 시비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훈계다. 귀머거리와 장님을 보고 비웃지 말라면서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옛 성현이 경계한 바와 일치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시비에 간여하는 망령든 사람들이 있느냐고 꾸짖었다. 사회현실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요 방관이다. 서리를 지냈던 중인 신분이었으니,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져보았댔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회적 체념 상태인 민중의 의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하겠다. 넷째 수는 늙음을 탄식하는 이른바 탄로가(歎老歌)다. 먼저 알고 늙었는지 모르고 늙었는지 묻고 있다. 누구나 청춘이 매양인 줄 알지만 늙음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노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자신은 주색에 탐닉하여 늙어가는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귀밑에 백발이 흩날리는 때가 되어 그제야 늙음을 슬퍼한다고 했다. 허송한 세월에 대한 회한이다. 마지막 수는 남은 날에 대한 지향을 표현한 것이다. 공자가 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진리를 누구에게 묻겠느냐면서 그것은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백성이 살아가는 속에서 인정은 알았지만, 세상일을 다스리는 지배층의 형편이나 모든 세상일에 대해서 조감해 알지는 못한다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래서 노년의 남은 날에는 전원에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가 깨우친 자기 나름의 진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