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규의 시
김우규(金友奎, 1691-?)는 영조 때의 가객(歌客)이다. <해동가요>와 <한국시가사강>에 따르면, 그의 자는 성백(聖伯)이고, 호는 백도(伯道)다. 숙종 때 서리(書吏)로 다닌 적이 있고, 김수장과 교분이 두터워서 노가재(老歌齋)에 자주 드나들었다. 김수장은 <청구가요(靑邱歌謠)> 발문에 쓰기를 “김우규는 나와 아주 친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곡에 재능이 있어 박상건(朴尙健)에게 노래를 배웠는데 채 일년이 안 되어 능히 스승을 흉내 내고 거기에 수식을 더하여 세상에 이름이 났다. 그의 시조는 뜻이 절실하다.”고 했다. 시조 18수가 전한다.
강호(江湖)에 임자 되니 이 몸이 한가롭다.
빈주(蘋洲)에 압구(狎鷗)하고 유안(柳岸)에 문앵(聞鶯)할 제
석양에 고기 낚는 배는 오명가명 한다.
강호(江湖)에 비 갠 후니 수천(水天)이 한 빛인 제
소정(小艇)에 술을 싣고 낚대 메고 내려가니
노화(蘆花)에 노니는 백구(白鷗)는 나를 보고 반긴다.
어부(漁父)의 생애(生涯) 보소 이 아니 허랑(虛浪)한가.
풍범랑즙(風帆浪楫)으로 만경파(萬頃波)에 띄워두고
낚시에 절로 무는 고기 긔 분(分)인가 한다.
늙고 병든 중에 가빈(家貧)하니 벗이 없다.
호화(豪華)로이 다닐 제는 올 이 갈 이 하도할샤.
이제는 삼척청려장(三尺靑藜杖)이 지기(知己)론가 하노라.
청천(靑天)에 떴는 구름 만첩봉만(萬疊峯巒) 되었구나.
수루룩 솟아올라 저 구름에 앉고라자
세상이 물욕(物慾)에 분주함을 허허 웃고 다니리라.
그는 김수장과 마찬가지로 젊어서 한 때 서리로 다녔으며, 당대의 이름난 가객이었다. 그의 시조는 “눈앞에 비치고 마음에 뜨는 것을 시조의 형식에 담았다.”는 평(評)처럼 어옹을 흉내 낸 사대부들의 관습화된 강호한정(江湖閑情)의 정서를 답습하거나, 보고 들은 것을 평이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조는 점차 관념적 세계로부터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로 변하고 있었던 만큼 그의 시조에서 드러나는 강호 어옹(漁翁)의 묘사는 사대부 시조의 영향이 없는바 아니지만, 차라리 자신의 주변을 사실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표현이 사대부 시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가인(歌人)이었으므로 시조에다 새로운 음악적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 수에서 셋째 수까지는 강호에 살면서 가어옹(假漁翁)이 되어 자연과 동화된 경지를 읊은 것이다. 첫 수에는 강호의 임자가 되어 개구리밥이 떠 있는 섬에서 갈매기와 친하고 버드나무 언덕에서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서 석양에 오고가는 고깃배를 구경한다고 하고, 둘째 수에는 비갠 후에 작은 배에 술을 싣고 낚시를 챙겨 강으로 내려가니 갈대 속의 흰 갈매기가 반긴다고 했다. 셋째 수에서는 어부의 생애가 뿌리박힌 데 없이 허랑하다면서 만경파도에 돛과 노를 맡기고 낚시에 무는 고기를 자기 분수로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다. 강호에 동화되어 산다는 말이 사대부에게는 벼슬길의 어려움에서 도피한 은둔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평민가객인 이들에게는 가난한 일상을 사대부 시조의 관습적 표현으로 미화한 것이다.
넷째 수에서 늙고 병들고 가난한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가객으로 이름을 날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석자의 지팡이에 의지한 병든 늙은이의 고적한 모습일 뿐이다. 이렇게 탄식하면서 현실로부터 초탈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 수에서 산봉우리처럼 솟아오른 구름을 보면서 자신도 하늘로 솟아올라 저 구름 위에 앉아서 물욕에 허덕이는 세상 사람들을 웃어주고 싶다고 했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에 대한 괴로움과 거기서 초탈하고 싶은 심정이 감춰져 있다.
늙도록 유신(有信)키는 아마도 남초(南草)로다.
추야장(秋夜長) 월오경(月五更)에 이같은 벗이 없다.
아마도 내 마음 알 리는 너뿐인가 하노라.
동령(東嶺)에 달 오르고 초당(草堂)에 손이 왔다.
아이야 씨닭 잡아 안주 바삐 장만하고
엊그제 쥐빚어 괴온 술을 어서 걸러 내어라.
젊어서 지낸 일을 이제로 비겨보니
마음이 호방(豪放)하여 노래로 일삼더니
어디서 모르는 벗님네는 좋을시고 하느니.
직녀(織女)의 오작교(烏鵲橋)를 어이 굴러 헐어다가
우리 님 계신 곳에 건네 놓아 두고라자
지척(咫尺)이 천리(千里) 같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처음에 모르더면 모르고나 있을 것을
어인 사랑이 싹 나며 움 돋는가.
언제나 이 몸에 열음 열어 휘들거든 보려뇨.
자신의 일상에서 취재한 소재를 평이한 어법으로 표현한 시조들이다. 첫째 수는 담배의 효과를 칭찬한 것이고, 둘째 수는 손님의 방문을 반기는 내용이다. 셋째 수는 가객으로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서 일말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고, 넷째 수는 이별한 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수는 가슴 속에 싹트는 사랑을 읊은 작품이다. 다양한 제재를 골라서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수법으로 표현했다. 이 시조들을 그는 자신의 곡조를 붙여 노래했을 것이다.
첫 수에서 남초(南草), 곧 담배가 오래도록 신의를 지켜왔다고 했다. 그 신의의 내용인즉, 긴 가을 달 밝은 밤 내내 잠 못 들어 할 때 담배가 동무가 되었으니 자신의 번민하던 마음을 잘 알리라는 것이다. 담배는 중독 되는 물건이나 그것이 주는 심리적 위안은 긍정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 둘째 수는 동산에 달이 떴을 때 반가운 손님이 왔으니 씨암탉을 잡아 안주를 마련하고, 엊그제 손으로 주물러 빚어서 익어가는 술을 걸러 내어오라고 재촉한다. 친구나 손님을 반기는 마음이 진솔하게 드러났다. 그의 시를 두고 뜻이 절실하다는 김수장의 평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셋째 수에서는 젊어서 자신이 노래에 마음을 빼앗겨 생계에 힘을 쓰지 않고 호방하게 지낸 것을 반성해 본다. 그래서 지금 이름난 명창은 되었지만 살림은 가난하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를 듣고서 좋다고 감탄을 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역시 자신의 생활과 심경을 적나라하게 실토하고 있다. 넷째 수는 떨어져 있는 님을 애타게 그리워하여 견우직녀의 오작교를 헐어다가 자신과 님 사이에 놓고 싶다는 것이다. 지척이 천리 같다고 한 것으로 보아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님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남녀애정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마지막 수는 가슴 속에서 자라나는 사랑을 식물 이미지로 형상한 것이다. 사랑이 마치 식물처럼 싹이 나고 움이 돋아 자라서 마침내 열매가 주렁주렁 맺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평이하고 절실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려서 형상화했으며 또한 시조창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