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신의 시
이정신(李廷藎)은 영조 때의 문신이자 가객(歌客)이다. 자는 집중(集仲)이고 호는 백회재(百悔齋)다. 영조 때 현감을 지냈다. 시조 창작과 창(唱)에 뛰어났다. 시조 15수가 전한다.
남이 해(害)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
참으면 덕(德)이요 겨루면 같으리니
굽음이 제게 있거니 겨룰 줄이 있으랴.
문 닫고 글 읽은 지 몇 세월이 되었건대
정반(庭畔)에 심은 솔이 노룡린(老龍鱗)을 이루었다.
동원(東園)에 피어진 도리(桃李)야 몇 번인 줄 알리오.
인간(人間) 오복(五福) 중에 일왈수(一曰壽)도 좋거니와
하물며 부귀(富貴)하고 강녕(康寧)조차 하오시니
그나마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야 일러 무엇하리오.
매아미 맵다하고 쓰르라미 쓰다 하네.
산채(山菜)를 맵다더냐 박주(薄酒)를 쓰다더냐.
우리는 초야(草野)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묵은 해 보내올 제 시름 한 데 전송(餞送)하세.
흰 골무떡 콩 인절미 자채 술국 안주(按酒)에 경신(庚申)을 새우려 할 제
이윽고 자미승(粢米僧) 돌아가니 새해런가 하노라.
먼저 자기수양과 처지, 그리고 한 해를 보내는 감회를 읊은 작품을 골랐다. 첫 수는 유교적 심성수양을 읊은 것으로, 남이 자기를 해치더라도 그를 상대로 다투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왜 그러느냐 하면, 참으면 나의 덕성이 길러지는 것이지만 맞서서 앙갚음을 하면 나도 악을 행하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은 남을 해친 자에게 있으므로 자신은 그런 악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수는 여러 해 동안 공부하여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자부한 것이다. 문 닫고 여러 해 공부하여 이른 경지가 마치 어린 솔이 자라 비늘 돋친 노송이 된 것 같이 되었다고 하고, 그 동안 동산에 피고 진 복사꽃과 살구꽃과 같이 시절에 영합한 무리는 아랑곳할 것 없다는 것이다. 셋째 수는 사람들이 바라는 인간 오복(五福)을 들어 누군가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사람의 다섯 가지 복은 오래 사는 것과 재물이 넉넉하고 신분이 귀하게 되는 것, 병 없이 건강한 것과 덕을 좋아하여 남에게 베푸는 것, 그리고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이라고 했는데, 앞의 셋은 이미 갖추었으니 뒤에 둘은 말할 것도 없이 누리시라는 축복을 늘어놓았다. 넷째 수에는 초야에 묻힌 자신의 처지를 말 재치로 재미나게 표현하였다. 매미와 쓰르라미의 이름과 울음소리에 연상시켜 자신이 먹고 사는 산나물을 맵다고 그러느냐, 맛없는 술을 쓰다고 그러느냐고 짐짓 묻는다. 초야에 묻혀 박주산채를 즐기고 사는 자신의 안빈(安貧)하는 처지를 토로한 것이다. 마지막 수는 섣달 그믐날을 보내는 세시풍속을 서술하고 감회를 부친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할 때 여러 가지 시름도 함께 보내 버리자면서, 골무처럼 생긴 떡과 인절미, 그리고 올벼로 담근 술, 안주 따위의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신에게 기원하며 경신년(庚申年) 마지막 날을 자지 않고 새우려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애들의 복을 빈다고 섣달 대목에 쌀을 모으는 자미승도 돌아갔으니 이제 새해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냈다.
늙어 좋은 일이 백(百)에서 한 일도 없네.
쏘던 활 못 쏘고 먹던 술도 못 먹괘라.
각시네 유미(有味)한 것도 쓴 외 보듯 하여라.
죽기 설워란들 늙기도곤 더 설우랴.
무거운 팔춤이요 숨 짧은 노래로다.
가뜩에 주색(酒色)째 못하니 그를 슬퍼하노라.
청춘(靑春)에 보던 거울 백발(白髮)에 고쳐 보니
청춘(靑春)은 간 데 없고 백발(白髮)만 뵈는구나.
백발(白髮)아 청춘(靑春)이 제 갔으랴 네 쫓은가 하노라.
자다가 깨어보니 이 어인 소리런고.
입아상하실솔(入我床下蟋蟀)인가 추사(秋思)도 초초(迢迢)하다.
동자(童子)도 대답(對答)지 아니코 고개 숙여 조을더라.
북두성(北斗星) 돌아지고 달은 미처 아니 졌네.
가는 배 얼마나 오냐 밤이 이미 깊었도다.
풍편(風便)에 수성침(數聲砧) 들리니 다 왔는가 하노라.
늙음을 탄식하거나 가을을 맞은 감회, 그리고 어디엔가 거의 당도한 느낌을 읊은 시를 골랐다. 첫 수는 늙어서 좋은 일이 백 가지에서 한 가지도 없다면서 그 예로 활도 못 쏘고 술도 못 먹고 게다가 각시와 즐기는 것도 쓴 외처럼 싫어한다고 하였다. 노년에는 힘이 없으니 활은 물론 주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쇠락의 비애를 실감나게 토로한 것이다. 둘째 수는 앞의 수와 의취가 비슷하다. 늙는 것은 죽기보다 더 서럽다며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춤을 추려 해도 팔이 무겁고 노래를 부르려 해도 숨이 가쁘다. 게다가 주색도 못하니 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수는 백발이 청춘을 쫓았다며 원망하는 노래다. 젊어서 보던 거울을 비쳐보니 젊었던 얼굴은 간 데 없고 백발만 무성하다. 그러니 백발이 젊음을 쫓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넷째 수는 자다가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쓸쓸한 가을 생각에 젖었다는 내용이다. 늙으면 잠이 적어서 자다가 어떤 소리에 놀라 깨었는데, 귀뚜라미가 내 자리 가까이에 들었는지 그 소리에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계절만 가을이 아니라 자신도 인생의 가을임을 알고, 쓸쓸하고 아득해 하며 옆에 있는 동자를 불러본다. 어린 동자는 늙은이의 가을 생각을 알 리 없으니 졸기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수는 밤중에 어디엔가 이른 것을 읊은 것인데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밤이 깊도록 배를 타고 간 모양이다. 북두칠성도 돌아서 모양이 달라지고 달은 아직 지지 않았다고 했다. 바람결에 다듬이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목적지에 거의 당도했음을 알린다. 노정을 읊은 것인데 인생의 노정을 암시하는 효과도 있다.
옥우(玉宇)에 내린 이슬 충성(虫聲)조차 젖어 운다.
금영(金英)을 손수 따서 옥배(玉盃)에 띄웠은들
섬수(纖手)로 권할 데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은병(銀甁)에 찬물 따라 옥협(玉頰)을 다스리고
금로(金爐)에 향을 피며 암축(暗祝)하여 비는 말이
아무나 전(傳)할 이 있으면 님도 슬퍼하리라.
홍루반(紅樓畔) 녹류간(綠柳間)에 다정(多情)할 손 저 꾀꼬리
백전호음(百囀好音)으로 나의 꿈을 놀래나니
천리(千里)에 그리는 님을 보고지고 전(傳)하렴은.
꿈이 날 위하여 먼 데 님 데려와늘
탐탐히 반기 여겨 잠 깨어 일어보니
그 님이 성내어 간 지 긔도 망도 없더라.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개천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느니라 이리 오면 사느니라 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와 아이들이 곤충을 잡는 것으로 세상사를 풍자한 노래다. 첫 수는 가을날 이슬을 받아드릴 님이 없음을 슬퍼한 여인의 노래다. 훌륭한 집에서 벌레소리에 젖은 이슬을 받아 옥으로 만든 술잔에 담아 국화 꽃잎을 띠웠으나 고운 손으로 바칠 님이 없으니 슬프고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님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에 가탁하여 충성을 읊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둘째 수는 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보여준다. 은으로 만든 병의 물을 따라 옥 같은 뺨을 다스리고 금 화로에 향을 피우며 가만히 축원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전해 줄 사람이 있다면 님도 그 마음을 알고 감동할 것이라고 했다. 님에게 바치는 애틋한 정성을 표현한 것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으로 읽을 수 있다. 셋째 수는 꾀꼬리에게 님 그리는 자신의 심정을 전해 달라는 노래다. 붉은 누각 옆 버들 숲 사이에서 다정하게 노니는 꾀꼬리가 온갖 듣기 좋은 소리로 지저귀어서 님을 만나는 나의 꿈을 깨운다고 하고, 그 꾀꼬리에게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님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넷째 수는 꿈에 님을 만났으나 깨고 보니 님이 가버린 허망함을 읊었다. 꿈이 님을 그리는 자신을 위해 님을 데려왔거늘 몹시 반기다가 꿈을 깨니, 님이 꿈을 깼다고 성내어 갔는지 흔적도 없더라는 것이다. ‘긔도 망도 없다’[蟹網俱失]는 말은 ‘게도 구럭도 잃었다’는 속담과 같은 말로 어떤 일을 하려다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그 수단마저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님을 만나려다 그 자취마저 잃어버린 서운한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마지막 수는 사설시조인데 아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잠자리인지 나비인지를 잡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고 아이들이 거짓말로 외치듯이 세상살이에도 이런 거짓말이 횡행한다고 은근히 풍자하였다. 이를테면 벼슬이 사는 길이라지만 그 길이 죽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