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신희문의 시

김영도 2018. 5. 30. 12:59

신희문(申喜文)은 정조 때 시조시인이다. <청구영언>에 따르면, 그의 자는 명유(明裕). 시조 내용으로 보아 벼슬길에 뜻을 두었다가 고향에 돌아가 농사에 종사한 은사(隱士)로 추측된다. 시조 15수가 전한다

 



자황분경(雌黃奔競)하매 떨치고 고원(故園)에 오니

탁주반호(濁酒半壺)에 청금(淸琴) 횡상(橫床) 뿐이로다.

다만지 생계(生計)는 있고 없고 시름없어 하노라.




청춘(靑春)에 불습시서(不習詩書)하고 활 쏘아 인 일 없네.

내 인사(人事) 이러하니 세사(世事)를 어이 알리.

차라리 강산(江山)에 물러 와서 이종천년(以終天年) 하리라.




인생천지(人生天地) 백년간(百年間)에 부귀공명(富貴功名) 여부운(如浮雲)

세사(世事)를 후리치고 산당(山堂)으로 돌아오니

청산(靑山)이 나더러 이르기를 더디 왔다 하더라.




그린 듯한 산수간(山水間)에 풍월(風月)로 울을 삼고

연하(煙霞)로 집을 삼아 시주(詩酒)로 벗이 되니

아마도 낙시유거(樂是幽居)를 알 이 적어 하노라.


진세(塵世)를 다 떨치고 죽장(竹杖)을 흩어 짚고

비파(琵琶)를 둘러메고 서호(西湖)로 들어가니

수중(水中)에 떠 있는 백구(白鷗)는 내 벗인가 하노라.




암화(巖花)에 춘만(春晩)한데 송애(松崖)에 석양(夕陽)이라.

평무(平蕪)에 내 걷으니 원산(遠山)이 여화(如畵)로다.

소쇄(瀟洒)한 수변정자(水邊亭子)에 대월음풍(待月吟風) 하리라.




벼슬에 뜻을 두었으나 현실의 부조리에 절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생활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골랐다. 첫 수는 엽관(獵官) 행위에 절망하여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읊은 것이다. 자황분경(雌黃奔競)은 답안지나 서류를 자황으로 지우고 변조하여 벼슬을 구하려고 쫓아다니는 일을 말하는데, 이런 현실을 보고 절망하여 고향에 돌아오니 탁주와 거문고와 평상을 벗해 살아가는 소박한 전원생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비록 생계는 어렵지만 엽관으로 얼룩진 현실의 부조리와 번뇌에서 놓여나니 시름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수도 역시 벼슬길을 포기하고 전원에 살겠다는 결심을 드러낸 것이다. 젊어서 시서(詩書)를 연마하지 않았고, 활쏘기를 연마하여 무과에 대비하지도 못했으니, 이래 가지고서야 벼슬길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실력을 겸사(謙辭)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라리 전원에 물러나서 하늘이 준 수명을 다 누리며 농촌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수는 부귀공명은 뜬구름 같은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청산에 살겠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백년도 못 살면서 뜬구름 같은 부귀공명을 쫓을 수는 없어서 현실의 번거로운 일들을 떨쳐 버리고 고향집으로 돌아오니 청산이 늦게 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청산에 살려는 뜻을 굳혔다고 하겠다. 넷째 수는 산수에 은거한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그림 같은 산수 속에서 맑은 바람 밝은 달을 울타리 삼고 안개와 노을을 배경으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니, 이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였다. 다섯째 수는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강호의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세상사의 번거로움을 다 떨쳐버리고 대 지팡이를 짚고 비파를 메고 서쪽 호수가로 들어가니 물 위에 뜬 갈매기가 바로 자신의 벗이라고 하여, 세속을 떠나 자연에 몰입한 경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수도 역시 자연몰입의 경지다. 바위틈에 핀 꽃에 봄은 늦어가고 소나무 선 벼랑에 저녁볕이 뉘엿하다. 넓은 황무지에 안개가 걷히니 먼 산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시원한 물가 정자에서 달이 돋기를 기다리며 음풍농월을 하겠다고 하였다. 험난한 현실을 떠나 전원에 숨어서 자연과 동화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즐거움을 시화한 것이다. 그러나 전원생활은 이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논밭 갈아 기음 매고 돌통대 기사미 피어 물고

콧노래 부르면서 팔뚝 춤이 제격이라.

아이는 지화자 하니 허허 웃고 놀리라.




베잠방이 호미 메고 논밭 갈아 기음 매고

농가(農歌)를 부르며 달을 띠어 돌아오니

지어미 술을 거르며 내일 뒷밭 매옵세 하더라.




술을 내 알더냐 광약(狂藥)인 줄 알건마는

잔 잡아 웃음 나니 일배일배(一杯一杯) 부일배(復一杯).

유령(劉伶)이 이러함으로 장취불성(長醉不醒) 하니라.




부용당(芙蓉堂) 소쇄(蕭灑)한 경()이 한벽당(寒碧堂)과 백중(伯仲)이라.

만산(滿山) 추색(秋色)이 여기저기 일반(一般)이로다.

아이야 환미주(換美酒)하여라 취()코 놀려 하노라.




성인(聖人)이 나 계오사 대강(大綱)을 밝히시매

예악문물(禮樂文物)이 아동방(我東方)에 찬연(燦然)이라.

군수덕(君修德) 신수정(臣修政)하니 태평(太平)인가 하노라.


여기서는 농촌 생활의 실제와 술 마시는 즐거움, 그리고 당대를 태평성대라고 덮어버리는 시를 뽑았다. 첫 수에서는 농사일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즐기는 태도를 드러낸다. 논과 밭을 갈고 김을 매면서 흙이나 나무로 만든 담뱃대에다 담배를 피워 문 농부가 콧노래를 부르며 팔뚝 춤을 추기도 한다고 했다. 아마 자신이나 이웃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농사짓는 괴로움을 노래와 춤으로 잊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웃어넘기는 농촌생활의 정겨움을 표현했다. 둘째 수도 농촌의 일상을 그려낸 것이다. 베잠방이에 호미를 메고 논밭을 갈며 김을 매고 날이 저물어서야 달빛을 띠고 농가를 부르며 돌아오자 아내는 술을 거르면서 내일 할 일을 이른다는 것이다. 농부의 생활이 힘들기는 하지만 즐겁게 농사일을 해나가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수는 술 마시는 즐거움을 읊었다. 농부의 힘든 노동을 잊기에는 술만한 것이 없다. 술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이긴 하지만, 일단 잔을 잡으면 즐겁고, 마시기 시작하면 한 잔 두 잔 계속 마시게 된다. 그리하여 평생 술을 좋아했던 진나라 유령(劉伶)처럼 자신도 오래도록 취하여 깨지 않겠다고 했다. 넷째 수는 가을을 맞이한 감회를 술로 풀어보고자 한 것이다. 해주에 있는 누각인 부용당과 전주에 있는 한벽당을 비교하여 그 시원한 경치가 비슷하다는 말로 초장을 삼고, 온갖 산에 가을이 와서 부용당이건 한벽당이건 자신이 사는 곳이건 어느 곳이라도 모두 서늘한 가을이 왔다면서 이런 좋은 계절에 좋은 술을 사와서 취하게 먹고 놀자고 하였다. 이름 있는 누각이나 여느 산골짜기나 가을을 맞이하기는 한가지라는 말 속에서 입신양명한 사람이나 시골에 은거한 사람이나 보람의 크고 작음이야 다르겠지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시골 사람의 자기합리화나 위안이 내비치고 있다. 마지막 수는 지금의 세상이 태평성대라는 다소 가식적인 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분경(奔競)하는 세태가 더럽다며 시골에 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성인(聖人)인 임금이 세상의 대강을 밝혀 밝게 통치하니 문물이 찬연하다면서 임금이 덕을 닦고 신하들이 정치를 잘 해서 태평성대라고 추켜세웠다. 조정현실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하는 소리인지 진정으로 칭송하는 소리인지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좋은 말로 꾸미는 것인지 복잡한 그의 심중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두고 가는 이별 보내는 내 안도 있네.

알뜰히 그리울 제 구회간장(九回肝腸) 썩을로다.

저 님아 헤어 보소라 아니 가든 못할쏘냐.




청춘(靑春)에 이별(離別)한 님이 몇 세월을 지내었노.

유광(流光)이 덧없어 곱던 양자(樣姿) 늙었구나.

저 님아 백발(白髮)을 한()치 마라 이별 뉘를 슬퍼라.




백발(白髮)이 공도(公道) 없어 옛 사람의 한()한 바라.

진황(秦皇)은 채약(採藥)하고 한제(漢帝)는 구선(求仙) 하였나니.

인생이 자유천정(自有天定)하니 한()할 줄이 있으랴.




이별의 아픔과 늙어가는 서글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첫 수는 사랑하는 님을 두고 가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가는 사람도 괴롭지만 보내는 사람의 속도 굽이굽이 서린 창자가 썩는 것 같이 쓰라리다. 그러니 내 마음을 헤아려 보고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하고 있다. 둘째 수는 이별과 늙음을 동시에 슬퍼하는 내용이다. 젊어서 헤어진 후에 많은 세월이 흘러갔고 곱던 모습도 어느덧 늙었다. 그러나 님에게 늙은 것을 한탄하지 말고 이별하던 때를 슬퍼하라고 하였다. 비록 지금은 늙었지만 옛날에 사랑하던 마음은 변치 않았으니 이별이 슬픈 것이지 늙음이 한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별도 서럽지만 늙음도 그에 못지않게 서러운 게 사실이다. 마지막 수는 늙음을 한탄하지 말고 하늘이 정한 대로 살자는 말이다. 백발이 공평하고 바른 도리가 없어서 옛 사람은 한탄했다는 말로 초장을 삼았다. 그러나 사실 늙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것이므로 백발을 피하는 묘책이 없어서 옛 사람이 한탄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진시황은 동남동녀를 삼신산에 보내서 불사약을 구해오게 하고, 한무제(漢武帝)는 신선이 되고자 했지마는 늙음을 피하는 묘책은 없었다.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하늘이 정해놓은 수명대로 산다면 늙음을 피하는 묘책이 없다는 따위의 한탄을 할 까닭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