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화의 시
오경화(吳擎華)는 조선 말기 중인 출신의 시인이다. <풍요삼선(風謠三選)>에 의하면, 그의 자는 자형(子馨)이고 호는 경수(瓊叟)이며 본관은 낙안(樂安)이다. <풍요삼선>에 그의 한시 한 수가 전하는데, 제목은 ‘술을 앞에 놓고 느낌이 있어(對酒有感)’이고, 본문은 “술을 대하니 백발이 가련하구나./ 세월은 물처럼 흘러 멈추지 않는데,/ 산새는 이미 저문 봄이 아쉬워,/ 자꾸 울지만 지는 꽃을 어이하리.(對酒還憐白髮多 年光如水不停波 山鳥傷春春已暮 百般啼奈落花何)”라고 하였다.
곡구롱(谷口哢)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작은 아들 글 읽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콧소리 한다.
맞추어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남산에 봉(鳳)이 울고 북악(北岳)에 기린(麒麟)이 논다.
요천일월(堯天日月)이 아동방(我東方)에 밝았어라.
우리는 역대일민(歷代逸民)으로 취(醉)코 놀려 하노라.
첫 수는 서민의 집안 분위기를 여실하게 그려낸 엇시조이고, 둘째 수는 어지러운 한말의 정세를 태평성대라고 눙치고 자유로이 술 마시며 지내겠다는 무관심의 표현이다. 첫 수의 초장에서 곡구롱은 꾀꼬리 울음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꾀꼬리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나니 다른 식구들은 분주하다. 작은 아들은 글공부하고 며느리는 베 짜며 손자는 콧소리를 하고 논다. 아마 큰 아들은 생업을 위해 나갔을 것이다. 낮잠을 잔 늙수그레한 주인공만이 한가한 형편이다. 종장에서 마침 아내가 술을 걸러서 맛보라고 권하니 자고나서 목이 마른 참인데 흡족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중인의 가정에서 감도는 넉넉한 분위기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의 한시에서도 ‘흐르는 세월에 백발이 가련하고, 꽃이 진다고 산새가 운들 어찌 하겠느냐’고 하여, 사람과 꽃의 대비를 통해 세월의 무정함을 슬퍼하는 심정을 산새에게 감정이입한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도 평이하면서도 여실한 장면제시를 통하여 그 솜씨를 드러내었다. 둘째 수의 초장에서 남산과 북악에 봉황과 기린이 나타났다고 하여 당대가 태평성대라고 했다. 봉황과 기린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상상의 동물이므로 이러한 둔사(遁辭)로 혼란한 시대를 휘갑쳤다고 하겠다. 중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요임금이 다스리는 시대를 맞았다고 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던 정세를 여항시인이 몰랐을 리 만무한데 이렇게 눙치고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하여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었던 절망감의 또 다른 표정일 뿐이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자신은 대대로 세상에 나서지 못하고 묻혀 지내는 백성일 뿐이니 취해서 노는 일 밖에 더 있느냐고 하여,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불평스럽게 내뱉고 있다. 나라가 기울어지는 현실을 외면하고 술이나 마시겠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좌절감의 토로일 뿐 아니라 당시 지배층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표현이라 하겠다.